‘동방의 등불’밝혀 길 찾는 이방인들

 지난 24일 50여명의 외국인 학자들이 안동 도산서원을 찾았다. 성리학 이기론(理氣論)에서 이(理)를 사물의 본질격인 DNA에 비유하며 우리말로 명쾌한 가이드를 하는 미국인 교수. 한자로 된 현판을 척척 읽어내려가며 뜻풀이까지 하는 벽안의 젊은 학자…. 답사객은 물론 지방 향교에서 온 유학자들까지 깜짝 놀라게 한 이들은 국내에 체류하며 한국을 연구하는 외국인 국학도였다. 한국국제교류재단 초청으로 2박3일 일정의 답사여행길에 오른 23개국 54명의 학자들. 푸른눈의 미국인, 한국계 2세, 입양아 출신, 태권도 수련자…. 저마다 다양한 이유로 한국과 인연을 맺은 뒤부터 한국이 학문과 인생의 화두가 돼버린 사람들이다.

#새뮤얼 페리

미 시카고대학의 페리(32)는 한국 문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꼼꼼하게 메모를 하는 그에게 한국과의 인연을 물었더니 10년 전에 만났던 재일교포 얘기를 꺼냈다. 일본 교토 북쪽의 가나자와라는 자그마한 마을에 체류하던 중 너무나 또렷한 ‘정치의식’을 가진 재일교포를 만나 한국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다고 한다. 원래 미 브라운대학을 졸업한 문학도. 후기 식민주의, 유물주의, 포스터 모더니즘 등 문학사조를 연구하다 한국의 ‘전향문학’에 심취했다. 체제에 눌려 사상을 포기해야 했던 1930년대 카프 활동가 이기영 등 문인들의 삶과 문학은 그의 마음을 휘어잡았다.

“한국은 정말 유니크한 나라입니다. 이번 연구는 한국의 독창성을 찾는 가치있는 작업이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아예 올 봄 연세어학당에서 한국어를 공부하기 위해 내한했다. 최근에는 30년대 신문에 연재됐던 여류소설가 강경애의 ‘장산곶’을 영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문학을 영어로 번역해 해외에 알리고 싶다고 했다.

#뤽 왈랭

펑퍼짐한 한복바지에 벙거지를 쓴 뤽 왈랭(32). 유창한 한국어와 생김새 때문에 외국인들조차 처음에는 한국인 가이드인 줄 알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2세때 벨기에로 보내진 입양아 출신. 91년 조국이 어떤 곳인지 궁금해 불어강사로 2년 동안 국내에 머무르다 한국학 공부를 하게 됐다고 한다. 그가 생각하는 한국은 가장 빠르게 변하고 있는 나라. 그렇다고 빠르게 현대화 되버려 옛 것을 잊어버린 것도 아니다. 오히려 사물놀이 같은 전통문화는 예전보다 더 풍부해졌다.

영국 런던대에서 한국학을 전공하다 95년 한국어 연수를 위해 1년동안 머물렀고 이번 한국 방문은 세 번째. 미국 오하이오 볼링 그린대학으로 건너가 역사학 박사과정을 밟다가 박사 논문을 쓰기 위해 한국에 왔다고 했다. 그가 연구하고 있는 주제는 학생운동이다.

“예전에 대학강사로 왔을 때에는 왜 그렇게 심하게 학생운동을 하는지 몰랐어요. 그러다 한 하숙집 선배로부터 객관적인 눈으로 학생운동을 연구해보면 어떻겠느냐는 이야기를 듣고 곰곰 생각했어요. 연구해볼 만한 일인 것 같아 시작했지요”

유교가 한국의 학생운동에 미친 영향은 무엇일까. 그래서 인지 서원의 벽돌 하나에도 눈길이 머물렀다.  

#호락 부부

돌배기 아들 아담과 함께 온 체코 출신의 호락 부부는 두 사람 모두 한국학도였다. 프라하 찰스대에서 한국학을 하고 있는 남편 토마스(28)는 벌써 이번이 세 번 째 한국 체류. 88년 북한 출신의 사범으로부터 태권도를 배운 것이 인연이 됬다. 고교때부터 동양학에 관심이 많아 중국과 일본 등 아시아에 관한 책을 읽으며 동양학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고 했다. 남편 토마스의 전공은 한국 불교사. 하지만 요즘 박사과정으로 9개월동안 한국어 품사론을 공부하고 있다. 현지 한국어과 교수가 정년퇴직하게 되면 자격을 갖춘 교수가 없어 한국학과의 존폐마저 문제가 되기 때문에 그가 뒤를 이어야 할지도 모른다며 씁쓸한 웃음을 던졌다. 두 살 아래의 부인 역시 한국학과 출신으로 4년 전 한국에서 6개월 동안 공부를 했다. 한국의 천주교 전래과정을 박사 논문으로 연구해야 하지만 아들 출산으로 잠깐 미뤘다. 현지에 한국 기업도 많이 진출하지 않아 취직도 어렵지만 그래도 한국학은 계속할 작정이라고 했다.

#노보르냠 바텔게르

노보르냠(32)은 몽골 국립대의 한국어과 교수. 우랄 알타이어를 연구하다 한국어를 전공하게 됐다고 한다. “사실 한국은 친근해요. 어려서부터 홍길동 등 북한의 조선 설화집이 재미있어 한국을 연구하게 됐어요” 96년부터 3년동안 서울대에서 한국어로 석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요즘에는 한국의 민속과 신화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주변의 학자들은 한국이 산업화되면서 무속자료 등이 많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그녀는 아직도 자료가 많다고 했다.

이밖에 김소월의 ‘진달래 꽃’을 줄줄 외웠다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대학생 타티아나는 앞으로 한국계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고, 30여년 전 평화봉사단으로 한국에 와서 근무한 것이 인연이 돼 한국학을 전공했다는 캐나다의 베이커 교수는 지난해 한국 여자친구와 결혼까지 했다고 웃었다. CNN 기자 출신으로 한국의 현대사에 관심이 많다는 에르네스토는 한국 전문기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이날 답사는 도산서원을 거쳐 병산서원으로 이어졌다. 여름방학이면 미국에서 제자들을 데리고 경주 양동마을에 와 두 달씩 묵어간다는 마크 피터슨 미국 브리검영대 교수는 기자에게 꼭 써달라며 한가지 부탁을 했다.

“유적지 마다 간단한 슬라이드라도 상영해 의미를 전해줬으면 좋겠어요. 어려운 건축양식과 연대만 적혀 있는 안내판도 문제입니다. 그래야 아이들이 겉만 보고 돌아가지 않고 선조들의 의미를 되새기지요…”

한국인들보다 더 한국에 대해 열정이 많은 외국인 국학도. 한국을 바라보는 이들의 눈동자는 무더위 속에서도 초롱초롱했다.

-1,000여명의 펠로 한국 알리기‘도우미’-  

이 날 만난 학자들은 모두 외교통상부 산하 한국국제교류재단(KOREA FOUNDATION)의 초청을 받은 펠로우(fellow)들이다. 1992년 시작된 펠로우십 제도는 세계 각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학 학자, 박사과정생, 학부생, 외교관 등을 지원해 한국을 널리 알리는 프로그램. 보통 6개월~1년 정도 한국에 체류하고 연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지원금액은 1개월에 80만~1백50만원 정도다. 이렇게 지원을 받은 펠로우들은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며 각 분야에서 한국에 도움을 주는 지한파로 자리잡게 된다. 실제로 94년 한국어 펠로우로 온 영국의 제인 포털은 대영박물관에 한국관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줬고 지금 그곳에서 큐레이터를 맡고 있다. 연구 결과도 풍성하다. 펠로우 중 절반이 연구논문이나 책을 출간했다. 98년 와세다대의 오무라 마츠오는 시인 윤동주 전집을, 97년에 한국에 왔던 불가리아의 드라가노프는 현국현대시선집을 자국어로 펴내 현지에 한국을 알렸다. 국제교류재단이 9년 동안 지원한 펠로우는 1,095명. 현재 한국에 체류중인 펠로우는 59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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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최병준기자 bj@kyunghyang.com / 최종 편집: 2001년 05월 30일 18:46: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