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일 3일 주말투어는
왁짜지껄한 도시에선 느낄 수 없는 공해가 없고 마을 주민들과의
친밀한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장소를 선택했다. 캐나다인
3명, 독일인 1명이다. 독일인 친구 마이크라는 친구는
헐리우두 수입물을 독일(윈헨)에서 더빙을 독일어로 하는
작업을 한다. 직업이 자유분방해서 그런지 한국에
온지 일주일도 되지 않는 데도 무척 붙임성이 있다. 캐나다인들
중 리사는 고려대학교에서 영어회화를 가르치고 캐서린과
아마데우스는 분당에서 중,고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친다.
교대역에서 출발해서 미니버스네서 일정 소개와 간단한
상견례를 하고 일주일간 쌓였던 스트레스를 뒤로 한채 부푼
여행이 시작되었다. 일정은 순조롭게 진행이 되는
듯 하다. 지방 투어의 문제점은 역시 도로, 그 주위
시설과 숙박이다. 중부고속으로 대전을 지나 광주를
톨게이트를 벗어나 국도를 지나가는 데 마땅한 식당이 보이지
않는다. 특히나 외국인들의 입맛에 맛는 식당은 더욱더
부톡한 편인 듯 보였다. 시장함을 달래가며 기웃기웃
거리다 결국 보성시내로 와서 밥을 먹었다. 가이드였던
이준탁 이사님은 불편하지만 양반다리를 하고 한번정도는
체험해야 된다며 탁자 대신 방으로 자리를 잡으셨다. 갈치정식을
주문하고 신선한 나물들의 설명을 곁들인 음식을 전생에
한국인인양 외국인들은 이성을 잃고(?) 먹기 시작한다.
특히 마이크(독일인 친구)는 반찬 하나하나를 음미하며
끝까지 남아 밥상을 사수한다. 그들의 젓가락 사용도
프로급이다. 젓가락질 잘 못하는 젊은이들은 고개를
숙이길 바란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하니 소기목적을
당성하고 차밭으로 이동했다. 보성은 차가 유명하다.
차밭을 올라가는 길은 정겹다. 외부인이 그리운지,
자기영역의 경계를 나타내는지 누렁이 한 마리가 입구부터
앞장을 서서 등성이 까지 따라 붙는다. 차는 4월에
씨가 날 때 딴 잎이 가장 질이 좋다고 한다. 4일
내지, 5일에 등성이를 로테이션으로 수작업으로 따다가
7월 한달을 휴지기로 하고 8월엔 기계로 정리를 한다고
한다. 등급별로 나눌 땐 8월의 잎은 가장 싸구려라
한다. 아주머니의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잎강의를
여행객들에게 설명을 해주고 본격적 일일 체험을 했다.
캐서린이 시골출신이라 자세가 잘 나온다. 보자기만
머리에 뒤집어쓰면 거의 아낙네와 흡사하다. 잎을
따서 씹어먹고 물을 마시니 달짝지근하다. 이 이사님이
격려차 일의 신명을 돕기위해 트롯트를 한 곡조 하신다.
흥이 났는지 일하는 아주머니도 어깨가 들썩인다.
내려오는 길에 차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시찰하고
녹차를 다원에서 마셨다. 차예법도 알려주며, 차마시는
절차도 설명을 해주니 그들은 녹차를 예찬하며 각각 신주
모시듯 사서 다음코스, 판소리의 대가, 정응민 공원으로
이동했다. 판소리의 본고장의 시설은 볼품이 없다.
화장실은 거의 폐허수준이고, 정응민 선생님의 무덤은
방치되어 있는 상태이다. 도청에선 뭘 하는지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하지만 의미있는 장소를 지나칠 수 없는
법, 한국의 파파로치를 인식시키는 사명감에 이이사님은
열정적으로 설명을 하신다. 마을 어귀 당산나무 앞에서
사진을 찍고 출발하려는 무렵 뜻하지 않은 반가운 분을
만났다. 판소리 연구보존 회장님을 만났다. 어려서
소리를 배우고 대를 잊기 위해 후배양성을 본 고장에서
힘을 쓰고 계신다. 외국인들이 오니 그냥 보내기가
섭섭한지 맥주를 한 잔씩 시켰다. 그리곤 즉석 요청에
따른 판소리 가락을 북장단에 맞쳐 한소절하니 외국인들은
뜻밖의 공연에 신나했고, 그들의 마음속에 우리가락이 여운이
서려 있으리라. 근처 숙소가 없어 광주로 와서 숙소를
정하고 그날 투어를 마무리 했다. 둘째날은 낙안읍성마을과
송광사 일정이다. 낙안읍성마을은 108개 옛마을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군사적 요충지로 지어졌다. 순천지역이
땅이 기름지고, 강을 끼고 있어 왜구의 약탈이 잦았고 마을의
요새가 불가피한 지역이다. 한국민속촌, 안동지방과
달리 상업화가 덜 되어이다. 허준이 촬영되기도 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주민들이 사는 전통집을 방문하고
베틀 짜는 법, 짚신 만드는 곳을 생활의 지혜도 느껴보는
시간들, 무엇보다 서당을 지나칠 때 훈장 선생님이 반갑게
맞으며 외국인들에게 직접 붓으로 글을 써 주면서, 난초도
그려주시며 서예와 동양화폭의 우수성을 설명하며, 화선지에
그린 그림들을 각각 선물로 주었다. 어찌 값으로
따질 수 있는 선물인가? 여운과 감동을 뒤로 한 채
송광사로 향했다. 근처 송광사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데
15가지 산채나물이 나온다. 마이크 독일친구는 또
식욕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외국인이 먹기 꺼끄러운
음식도 있건만 하나하나 음미하며 먹기 시작했다. 그는
여행의 멋을 아는 친구다. 송광사는 선종의 본사이며
16국사 위패가 모셔져 있고, 선에심취한 국제선원들이 거주하며
수행을 하는 곳이다. 대나무 숲을 10여분 걸어 부도(대사들의
업적을 취하하는 비석과 그 밑에 사리함을 장치함)를 설명하고
오솔길 빠져 내려오는 풍치가 송광사의 영험과 신비함을
더한다.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사찰의 정경은 잘 짜여진
웅대한 사찰의 옛 영화를 반영하는 듯 하다. 정적속에
힘에 압도된 곳, 교리보단 수행으로 열반의 경지에 오르기
위한 고통속의 평화가 숙연해 져가는 계속되는 감동으로
일체감을 느낀다. 다행히 고속도로의 상황이 나쁘지
않아 순탄한 도착으로 일정이 마무리 되었다. 우리것이기에
쉽게 잊고 살던 우리의 것을 외국인들과의 여행을 통해
소중하게 되새겨 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